
강지용의 죽음은 조용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전직 K리그 축구선수였던 그는 지난 2월 JTBC 예능 '이혼숙려캠프'에 아내와 함께 출연해 갈등과 상처를 털어놓았다.
방송 속 그는 "자다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고, "차에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생각을 이미 구체적인 계획처럼 말하던 그에게 방송은 무엇을 해주었고, 무엇을 놓쳤을까.

그의 삶은 단지 은퇴한 운동선수의 초상이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그는 과거 11년간 프로 무대에서 벌어들인 연봉 5억원 이상을 모두 가족에게 관리받았고, 결국 자신에게 남은 건 빚뿐이었다.
아내와의 갈등도 대부분 돈과 시댁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였다. 하지만 방송은 이 복잡한 현실을 날카롭게 짚기보다, 두 사람의 감정을 전시하는 데 집중했다.
'이혼숙려캠프'의 출발은 분명 악의적이지 않았다.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이 막판 고민의 시간을 통해 관계를 되돌아보고, 소송 이혼에 앞서 감정과 현실을 정리해보자는 기획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전문가의 조언, 합숙을 통한 깊은 대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미션까지. 프로그램은 진정성 있는 출발선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을 꺼내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책임은 무거워진다. 특히 이미 지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하지만 방송은 어느 순간, 공감을 유도하는 장면과 극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의 무너지는 목소리와 고백을 하나의 장면처럼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JTBC는 강지용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그가 출연했던 방송 회차의 다시보기를 비공개 처리했다. 조용한 애도의 제스처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최근 '나는 솔로' 24기에 출연한 영식 역시 방송 이후 심각한 악플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지난 21일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 자신의 고통을 고백했다.
방송 속 집착적 이미지가 과장되게 편집되었다며, "경계선 지능", "스토커", "찐따" 같은 조롱과 부모에 대한 욕설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방송 직후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위축됐으며,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방송 중 오열하거나 문틈 사이로 상대 출연자를 바라보던 장면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앞서 그는 SNS를 통해 "스토킹, 범죄자 취급 등 도를 넘은 비난은 자제를 부탁드린다. 많이 힘들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리얼리티 예능이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감정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프로그램의 취지가 선하더라도, 출연자의 고통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고통을 꺼내 보여주는 방송이라면,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책임과 성찰도 함께 따라야 한다. 이 참담한 비극은 리얼리티 예능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다뤄야 할지를 다시 묻고 있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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